▶시인
* 김영랑(1903~1950) 시인
본명은 김윤식. 영량은 아호.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 출생. 1915년 강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난 후 1917년 휘문의숙에 입학하였다. 휘문의숙에 입학하면서 문학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는데, 홍사용, 안석주, 박종화 등의 선배와 정지용, 이태준 등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의 화백 이승만 등으로부터 직, 간접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 중학부를 거쳐 청산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 무렵 독립투사 박열과 교유하고 박용철과 친교를 맺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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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 향리에 머물렀다. 광복 후 오랫동안의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곧바로 서울에 올라와서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1950년 9.28 수복 당시 서울에 머물러 있다가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광주광역시 광주공원과 그의 고향 강진읍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1930년 3월 박용절, 정지용, 이하윤 등과 창간한 동인지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 7수를 발표하면서 본격인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문학’, ‘여성’, ‘문장’, ‘조광’, ‘인문평론’, ‘백민’,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창작시와 번역시 및 수필, 평문 등을 발표하였다. 시집으로는 ‘영랑시집’(1935)과 자선시집 ‘영랑시선’(194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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