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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연경당에 대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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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에 대해
연경당은 흔히 비원이라고 불리는 창덕궁의 후원에 자리 잡고 있다. 연경당은 효명세자(1809~1830)가 세도정치에 시달리는 아버지 순도를 위한 효도의 차원에서 창덕궁 후원에 120여 칸의 민가 형식으로 1827년에 건립되었다. 당시 왕세가의 청으로 사대부의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사대부가를 궁내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듬해 어머니인 순원 왕후의 생일 축하 진작 행사와 각종 정재 공연이 거행되었다. 연경당의 사랑채 이름이 연경당인데 경사스러운 행사를 연행한다는 의미에서 연경이라는 의미를 붙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대부 양반가 살림집을 본떠 지은 연경당은 120칸 규모라고 한다. 연경당은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전형적인 구성과 격식을 갖추고 있으며, 오늘날 조선시대 후기의 한옥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연경당이 일반 사대부가와 다른 점은, 그것이 궁궐 안에 지어졌기 때문에 사당을 두지 않았으며, 안채 건물에는 부엌이 없고 대신 안채의 후면에 음식을 준비하는 반빗간이 설치된 것이다. 연경당은 안채, 사랑채, 안행랑채, 바깥 행랑채, 서재인 선향재, 반빗간, 농수정이라는 이름의 정자 등 여러 채(건물), 그리고 그것들과 각각 짝을 이루는 마당으로 구성된다. 반빗간이란 반찬을 만드는 곳이란 뜻으로 음식을 준비하던 건물이다. 반찬 만드는 일을 맡아보던 여자 하인을 반빗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대문간으로 접근하는 모습
안채로 진입하는 중문간, 수인문
수인문에서 바라본 안채
안채
안대청에서 바라본 굴뚝과 반빗간
안채의 한 칸
안채의 측면에서 바라본 안채의 실들과 개구부
안채의 뒷마당
사랑채로 진입하는 중문인 장양문을 안채에서 바라본 모습
사랑채
연경당 조감도와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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