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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닌과 프루동 그리고 크로포트킨
바쿠닌과 프루동 그리고 크로포트킨
1. 들어가며
우리는 가장 최초의 독창적인 무정부주의적 사상가로 규정되는 프루동을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다. 1850년대와 1860년대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그의 相助論은 위에서 말한 하위 범주 중에서 가장 非社會主義적인 것이다. 그는 분권적 또는 무정부적인, 코뮌(프랑스적 의미의 자치제)과 노동조합의 연합을 기대했는데, 그 연합에서는 생산수단은 개인이나 소집단에 의해 “소유되지않고 유지되어질 것”이며 개별 노동자들은 貸金業者, 중간상인, 혹은 자본가들에 의해 착취되지 않고 그들의 노동의 과실을 보장받을 것이었다.
[제1 인터내셔널]에서 마르크스의 가장 격렬한 반대자였던 바쿠닌(Michael Bakunin: 1814-76)은 프루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와 그의 지지자들은 1860년대 말에 이르면 점증하는 산업집중화라는 현실에 무정부주의자적 태도를 적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프루동의 개인적 소유개념을 대규모의 자발적 연합체에 의한 소유개념으로 대체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생산성에 따라 “정당하게” 지급받아야 한다는 프루동의 주장을 계속 수용했다.
1870년대 말에 크로포트킨大公(Peter Kropotkin: 1842-1921)과 그의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자 찬양자들은 더 나아가 임금과 가격체계의 전반적 개념의 폐지를 요구하므로써, 그리하여 일종의 상품 공동보관소를 가진 비소유적 사회라는 구래의 코뮌적 理想으로 되돌아감으로써 프루동과 바쿠닌의 “정당한” 보상에 관한 주장과는 결별하였다. 이 비소유사회에서는 “각자의 능력으로부터 각자의 필요에까지”라는 모토가 지배하게 된다.
2. 3인의 이론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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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p/pdf]바쿠닌과 프루동 그리고 크로포트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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