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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북한군의 9월 공세 - 기계, 안강지구전투
북한군의 9월 공세
-기계, 안강지구전투-
1.서론
기계-안강전투는 1950년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기계와 안강, 포항과 경주 북부 일원에서 국군 1군단 예하 수도 사단이 북한군 유격부대인 766부대로 증강된 12사단의 남진을 저지한 방어전투다. 1950년 7월 말까지 지연작전을 수행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8월 1일을 기해 낙동강에서 최초로 좌우가 연결된 방어선을 편성했다. 이때 중동부전선을 담당하던 국군 1군단은 북한군 주력이 안동-의성-영천 접근로에 투입될 것으로 판단하고, 예하 8사단과 수도 사단을 의성과 길안 일대에 각각 배치했다.
북한군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에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전에 신속한 추격 작전으로 이를 돌파 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8월 5일부터 낙동강 일대의 모든 전선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이로 인해 마산~왜관~영덕에 이르는 국군과 유엔군의 방어선 곳곳에서 돌파구가 형성되는 위기가 발생했다. 특히 길안 일대의 수도 사단 방어진지가 급속하게 와해되면서 청송~기계 축선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됐다. 북한군 12사단은 이 공백지대를 통해 저항 없이 남하해 8월 9일 기계를 점령했다.
북한군의 기계 점령은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는 데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가지게 했다. 왜냐하면 북한군이 기계 바로 남쪽의 안강-경주로 침투할 경우 국군의 방어선은 동서로 양분돼 대구와 포항이 위태롭게 되고, 나아가 부산 방어를 위한 차후 방어선 편성도 어렵게 되어 수습할 수 없는 국면에 빠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지역은 북한군에게 내어 줘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곳이었다.
국군은 8월 9일 대구에서 새롭게 편성 중이었던 25연대를 안강 지역에 급하게 파견하였고, 뒤이어 기계·포항지구의 방어임무를 위해 포항지구전투사령부를 빠르게 편성했다. 이때부터 기계-안강 일대에서는 국군이 공세로 전환하기 전인 9월 22일까지 40여 일간에 걸쳐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게 됐다.
2.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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