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독립운동가
荷山 양기하(梁基瑕) 선생
(1878. 10. 8∼1932. 2.)
1921.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1927. 육군주만참의부 교육위원장
1929. 국민부 지방부 집행위원
1931. 조선혁명당 정치부장
1932. 전사 순국
조선혁명의 최후 해결은 조선 노력대중(勞力大衆)의 모든 부대를 동원하여 일본 군대·경찰·헌병·감옥·소방대 등을 근본적으로 격파하고, 정치·경제·문화 기타 제국주의적 제(諸) 시설을 모두 파괴함에 있다. 또한 조선민족의 독립국가 건설을 일본 제국주의의 일체 세력을 구축 박멸하는 것에서만 완성할 수 있다.
- 선생이 가담하여 활동한 조선혁명군의 선언서 중에서 -
선생은 1878년 10월 8일 충남 논산군(論山郡) 두마면(豆磨面)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호는 하산(荷山)이며, 이명(異名)으로는 기하(基河)·인원(仁元), 그리고 임창주(林昌周) 등이 있다.
선생은 대한제국 말기 공주(公州) 군수 등 관직에 있다가 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주권이 상실되자 국권회복을 모색하기 위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리하여 선생은 서간도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강원도와 황해도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박장호(朴長浩)등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의 문인들과 더불어 교육사업에 종사하면서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군 양성에 노력하였다.
삼원보에서 대한독립단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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