遯軒 임병찬(林炳瓚) 선생
1851. 2. 5~1916. 5. 23
․1906. 무성서원에서 창의(倡義)
․1912.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를 조직, 전국 규모 항일운동 추진
․1916. 5. 거문도 유배(流配) 순국
․1962.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1906년 면암 선생과 전남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창의(倡義)의 기치를 들었으며, 경술국치 후 광무황제의 밀칙(密勅)을 받고 전국적 규모의 「대한독립의군부」를 결성하여 의병전쟁을 일으키다 일제에 피체(被逮)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거문도에 유배되어 순국하시다.
일찍이 학문을 배워 어려서 신동(神童)이라 불리다
1851년 2월 5일 전북 옥구군(沃溝郡) 서면(西面) 상평리(上坪里)에서 임용래(林榕來)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중옥(中玉), 호는 돈헌(遯軒)이다. 세살때 천자문을 읽었으며 한번 읽어 내려가면 바로 외어버려 부친이 재주가 지나칠까 두려워하여 가르치기를 그쳤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총명했다. 5살때부터 동리 사숙(私塾)에서 본격적인 학문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때 이미 오언(五言), 고풍(古風), 수귀(數句)를 읽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나 모든 이들이 그를 신동이라 일컬었다 한다. 그후 향시 백일장에 나가 「대고풍」(大古風)으로 수석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낙안군수에 부임하여 부정부패척결에 앞장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