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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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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현(南慈賢) 여사
1872. 12. 7~1933. 8.22
․1925년 조선총독(齊藤實) 주살시도
․1932년 국제연맹조사단에 독립호소(하얼빈)
․1933년 주만일국전권대사(武藤信義) 주살기도
․1933. 8월 순국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만일 너의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너의 자손에게 똑가X은 유언(遺言)을 하여 내가 남긴 돈을 독립축하금(獨立祝賀金)으로 바치도록 하라.
효부, 열녀, 열사 등 지조(志操)와 도덕(道德)․예지(叡智)와 의용(義勇)이 만인의 귀감이 될만한 여사, 인격(人格)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며 일평생을 오로지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족의 존영을 위하여 싸우시다 옥고로 순국한 남자현 여사의 유언이다.
망부(亡夫)의 설원(雪寃) 위해 독립군(獨立軍)의 어머니로
1872년 12월 7일 경북 안동군 일직면 일직동에서 영남의 석학인 부친 남정한(南珽漢)의 3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나 어릴때부터 품성이 단정하고 총명하였으며 7세 때에 국문에 능통하였고 부친의 가르침을 받아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을 통달하였다.
19세에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 사는 의성 김씨(義成金氏) 김영주(金永周)에 시집을 가 단란한 생활을 꾸렸으나 일제의 만행이 점차 극성을 부리자 남편 김씨(金氏)는 1896년 여사에게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집에 홀로 있을 것인가. 지하에서 다시 보자0117며 결사보국(決死報國)을 결심하고 영양의병장(英陽義兵將) 김도현(金道鉉) 의진에게 왜군과 전투중 전사하였다 한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으로 망명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 항일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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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가보훈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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