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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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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백린(盧伯麟) 선생
1875. 1. 10~1926. 1. 22
․1904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장, 육군연성학교장 등 역임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비행사 양성소 설립
․1923년 임시정부 국무총리․국무총장 역임
․1962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한 평생을 무인(武人)으로서 항일무장 전투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특히 미국에서 최초의 항일비행사 양성소를 설립하게 된 것은 군 역사상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임시정부 군무총장 등을 역임하면서 독립군의 전투력 증진에 힘쓰다 1926년 1월 중국 상해에서 작고하였다.
정부관비생으로 도일하여 면학하다
선생은 황해도 송화(松禾)군 풍해면 성하리에서 1875년 1월 10일 본관(本貫) 서하노씨(西河盧氏)인 시골 선비 노병균(盧秉均)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은 어릴때부터 남달리 신장이 크고 얼굴도 컸으며 마음이 침착하고 성격이 매우 호탕하였다. 부친은 장차 무인이 되기를 희망하고 병사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지장(智將)이 되기를 바라고 아들의 한문수학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다.
21세 되던 해인 1895년에는 당시 내무대신인 박영효의 주창에 다라 이루어진 대한제국 정부 관비생으로 뽑혀 일본의 소위 명치유신 후 급격하게 발전하게 된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배운다는 목적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선생은 일본 동경에 있는 경응의숙(慶應義塾) 보통과와 특별과를 마치고 1898년 11월 성성학교(成城學校)를 졸업한 뒤 다시 일본 육군사관학교 11기생으로 입학하여 비로소 신식 군사학을 배우게 되었다. 어릴때부터 무인되기를 원하였던 만큼 열심으로 학업에 정진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무인으로서의 기질과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전형적인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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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가보훈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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