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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생애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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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tolt Brecht의 「갈릴레오의 생애」를 읽고...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나에게 와 닿았던 부분은 바로 다음의 갈릴레오의 대사이다.
과학자로서 나는 유일 무이한 기회를 가졌었지. 나의 시대에,
천문학이 시정의 광장에까지 퍼져나갔네. 이런 비상한 상황에
서라면 한 장부의 의연함이 커다란 격동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을 걸세. 내가 만약 저항을 했더라면 자연과학자들도 의
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것을 발전시킬수 있었을 테지
- 자신들의 지식을 오로지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만 적용한다
는 맹세 말일세!
세계 제2차 대전중에 작가는 이 작품을 썼다. 그가 이 작품을 쓸 때만 해도 우라늄의 핵분열이라는 과학계의 성공은 갈릴레오가 지구는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 만큼이나 새로운 시대의 개막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전쟁이 끝난 후 작가는 이 작품을 개작했다. 그가 중점적으로 개작한 부분은 13장으로 배반자와 비겁자로서의 갈릴레오의 면모를 부각시켰다. 스승의 의연함을 철썩같이 믿고 기다리는 제자들 앞에, 갈릴레오는 권력에 굴한 뒤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아마도 원자폭탄의 제작에 참여 했던 과학자들에게 작가가 보냈던 경종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갈릴레오의 지동설과 원자폭탄 발명을 한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면 지동설은 진실 그 자체이며 인류에게 해를 미치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의 배경을 볼 때 당시 교회의 권위가 하늘을 치솟았던 사회에서 갈릴레이의 지동설은 사회의 질서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갈릴레오의 지동설과 핵폭탄이 같는 의미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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