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내 젊은 시절의 안타까운 기억 하나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새롭다.
어렸을 때 내게는 나보다 세 살이 더 많은 누이가 있었다. 누이는 무슨 병으로인가 늘 시름시름 앓고 있었는데, 별로 말이 없었다. 내가 뭐라면 고작 억지인 듯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게 그가 보이는 성의의 전부였다.
나와 누이는 다른 친구가 없었다. 한참 친구를 사귈 시기에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한 탓도 있었지만 누이가 거의 집안에서만 지내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머니가 돌아오시는 저녁때까지 마루와 장독대 그리고 텃밭으로 옮겨가는 햇살을 따라 해바라기를 하거나,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빗줄기와 그것이 만드는 물방울들을 보면서, 주로 그렇게 집안에만 박혀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나의 유일한 친구는 누이였고 누이의 유일한 친구는 나였다. 그런 누이가, 내가 철이 들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갈 무렵, 돌연히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나에겐 곧 한 세계의 상실을 의미했다.
누이 위에는 나와 9살 터울인 형이 있었으나, 그 무렵의 나는 형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누이가 죽었을 때도 형을 보지는 못했다. 타관에 나가 있던 형을 처음 보게된 것은 내가 국민학교를 들어가고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형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느끼는 형과의 거리감은 사실상의 나이차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
하기에 누이의 죽음은 내게 엄청난 상실감으로 닥아왔고 그것은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노래 하나를 듣다가도 우리는 문득 어떤 기억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되고, 어떤 책을 뒤적이다가도 불현듯, 이젠 세월의 한 켠에 묻어버린, 그래서 사뭇 잊고지내던 지난 시절의 기억들과 만나 새삼 거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김약국의 딸들」을 대할 때면 소롯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내 어린 시절의 그런 사적인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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