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변명
펠로폰네소스전쟁 패전후 소크라테스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 몇몇 정치인들의 농간에 의해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결국엔 최후진술이 되고만-‘변명’을 하게 된다.
“ 이 사람보다는 내가 더 지혜가 있다. 왜냐하면, 이사람이나, 나나,좋고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네, 이 사람은 자기가 모르면서도 알고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모르고 또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보다는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명을 썼다.
지식이 많으면 진실과는 멀어져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지식을 악용할 따름이나, 지혜로움으로 가득찰수록 사람은 시비를 가릴수 있는 객관의 눈이 맑아진다. 즉 사리사욕보단 진리의 편에 설수 있는 마음의 양식은 지혜로 채워지는것이다. 여기서 지혜로움이란 별다른게 아니다. 모든 사물과 현상앞에 겸허하여 모르는 것을 모른다 인정하는 진실함솔직함이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늘 고개숙이는 몸가짐을 가지기란 힘들다.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지혜로움을 위대하다 말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정치가비극작가뒤튀람보스작가온갖 시인기술자등 사회 각분야에서 지자(知者)라고 추앙받는 이들을 찾아가 대화를 해본결과, 정치가는 모르는 것도 아는척하고, 예술가들은 타고난 재질을 지혜로 착각하고 있으며, 기술자들은 기술분야 외에 다른분야의 일에 관해서도 자기가 최고라는 자만에 빠져있었다. 바로 이러한 자칭 지자들의 무지(無知)를 일깨워준데서 반발을 사게 된 것이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곳곳을 다니며 자칭 지혜로운 자들이라 불리우는 기득권층의 아집을 깨부수려 애써왔지만, 그 노력의 결과는 사형선고였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아테나이가 아무리 작은 도시국가라 할지라도, 의와 혈연으로 뭉친 작은 촌락단위보다 큰이상, 의(義)와 옳음의 길로 기득권층을 계도하려했던 소크라테스의 노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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