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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조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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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 개론>
-그들에게 고함-
(고려시조를 감상하며)
1.서론
고려 후기에 이르러 신흥 사대부들이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경기체가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유교적 이념을 표출하기 위해 또 다른 표현 영역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창안된 국문학 양식이 시조이다. 고려시조의 기원은 무당의 노랫가락 기원설, ‘정읍사’와 같은 6구체가 기원설, 한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성되었다는 설, 고려 가요 기원설, 특히 ‘만전춘 별사’에 보이는 3장(三章) 형식이라는 주장 등 다양하다. 그 중 고려 가요의 형태상 특징이 허물어지면서 단형화되어 새로운 시조형이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시조는 고려 말엽에 이르러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부각된 성리학을 신봉하였던 유학자들에 의해서 정립된 장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일반적인 형식은 3장 6구(三章六句), 45자 내외를 기본형으로 한다. 음수율은 34조 또는 44조가 기조가 되어있으나 한 두 음절의 가감은 무방하다. 4음보의 율격을 이루며, 종장의 첫 음보는 3음절로 고정되어 있고, 둘째 음보는 5음절 이상이어야 한다. 시조에 있어 가장 엄격한 제약이 따르는 것은 종장의 첫 음보이고, 다음은 종장의 둘째 음보이다.
고려시조는 창(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민요가 음악이면서 문학이듯이 시조도 음악이면서 문학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시조는 문학적으로는 시조라는 시형(詩形)을 의미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시조창(時調唱)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현재에 전해지고 있는 고려의 시조는 조선의 시조와 달리, 고려 귀족에 의해서 창작되어진 평시조가 많다. 따라서 이 시조들의 주제는 회고와 탄로(嘆老) 등 일편 단심을 노래한 것이 많다. 그 이유는 고려 왕조의 몰락이라는 암울한 배경에서 충신들이 연군지정과 우국지사를 통하여 어려운 시대상을 반영하며 읊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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