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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순 밤길의 사람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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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 1
박태순 밤길의 사람들'
시위대는 매일 밤마다 명동을 순회하고 있었고, 강강수월래를 하고 있었다. 을지로쪽에서와아와아 하다가 신세계쪽으로 돌고 퇴계로 쪽으로 술래잡기를 하다가 다시 충무로쪽으로 제일백화점 앞으로, 그리하여 명동성당 쪽으로 원무의 무대를 바싹 좁혀 놓곤 했다. 밤길의 사람들은 새로운 기질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최루탄이 터지면 마치 불꽃놀이에 놀란 강아지들처럼 흩어졌다. 그러나 금세 다시 모여들었다. 결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박태순(54)씨의 중편 <밤길의 사람들>은 1987년 6월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어떤 열기에 관한 이야기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에 요약된 그 열기는 많은 사람들을 밤길로 내몰았다. 4․19나 부마사태, 그 이전의 농민군 봉기에 필적할 함성과 흥분이 그 밤길을 채웠다. <밤길의 사람들>은 비록 그 범위를 서울 영등포와 명동 일대로 국한시키고 있지만, 1987년 6월의 밤과 낮에 그 열기는 휴전선 남쪽의 거의 전부를 채우다시피 했다.
12․12 쿠데타와 광주학살을 통해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두번째 집권을 위한 시나리오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86년엔 서울 아시안게임을 성공리에 열었고, 88년엔 꿈과도 같은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다. 국민들은 수출고와 국민소득 향상으로 대별되는 경제성장에 현혹돼 어느정도의 정치적 부자유쯤은 용납하려는 것 같았다. 재집권을 위한 권력쪽의 의욕은 5․3 인천사태와 부천서 성고문 사건, 건국대 사건과 같은 무리수와 강압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87년 초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숨진 사건은 (책상을)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식의 어거지로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그것은 5공화국의 저 숱한 의문사의 하나로 역사의 갈피에 접혀지려는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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