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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60297_천년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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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장보고란 인물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삼국사기에 전해지는 내용 속에서 우리는 장보고를 단순히 바다에서 싸웠던 한 장수 중 한명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대부분 일 것이다. 이번에 경영학 관련 책을 찾던 중, 많은 내용들이 대부분 외국의 기업이나 CEO들이 대부분이여서 무언가 우리 안에서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던 중 '천년 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란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어쩌면 짧게 지나가고 말 법 한,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년 전 통일신라시대에서도 명성을 떨쳤고 또 그의 생각과 업적을 지금의 우리 시대에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한 한 장수의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한다.
우선 장보고의 출생부터 생각해 보면 그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지 100여 년이 지났을 무렵인 8세기 말 통일신라시대에 완도 부근의 한 섬에서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 당시 신라에는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제도 있어서 백제계나 고구려 계는 출세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장보고는 원래는 궁복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그 당시 기회의 땅이라 생각됐던 당나라로 건너가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장보고란 중국식 이름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식 이름을 쓰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당에서 활동하던 장보고는 해적에게 잡혀온 신라의 양민이 노예로 매매되는 참상을 접한 후 이의 근절을 위해 귀국을 결심한다. 독실한 불교도로서 이국땅에 오래 살았던 그에게는 민족주의적, 인본주의적 면모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당시에는 신라의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약탈과 인신매매를 하던 해적들이 많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평소에는 무역에 종사하는 인물들이 이었지만, 무역길이 막히면 해적이 됐던 집단 들이였다. 당과 신라가가 이들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회유책도 써보고 강경책을 시행하기도 했지만 이들을 통제할 강력한 무력이 존재하기 않아 여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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