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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 건축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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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時代 新羅 建築에 대한 小考
目次
Ⅰ. 序論
Ⅱ. 本論
1. 都城과 宮闕
2. 佛舍建築
(1) 절
① 興輪寺
② 黃龍寺
(2) 佛塔
① 芬皇寺塔
② 義城 塔里 五層 石塔
3. 살림집
4. 墳墓建築
(1) 돌무지 덧널무덤
(2) 구덩식 돌널무덤
(3) 굴식 돌방무덤
5. 기타 石構造物
(1) 瞻星臺
(2) 慶州 石氷庫
Ⅲ. 結論
Ⅰ. 序論
建築의 學問的 體系는 大蓋 西洋 建築에 의해 틀잡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나라 建築物 中에서도 뛰어난 것이 많음에도 不拘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學問的 硏究가 매우 不足하다고 볼 수 있다. 最近 들어 우리 建築物에 대한 關心과 理解가 높아진 것은 事實이나, 아직도 西洋에 比하면 갈 길이 멀다. 建築을 工夫하는 韓國人 學生으로서 韓國 建築에 대한 工夫는 꼭 必要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幾回에 旣存 書籍들을 中心으로 韓國 建築에 대해 工夫해 보기로 하였다.
韓國 建築에 대해 모두 工夫한다면 물론 가장 좋을 것이나, 그러기에는 時間도 여의치 않고 力量도 不足했다. 그래서 範圍를 좁혀 韓國 建築 中 三國時代 新羅의 建築만을 硏究하기로 한다.
Ⅱ. 本論
新羅는 韓半島의 東南部에 位置하여 처음에는 中國 文物에 直接的으로 接할 수가 없었다. 高句麗, 百濟를 通하여 間接的으로 그 文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文化 發展도 三國 中에서 가장 뒤지게 되었다.
新羅는 三國 中에서 佛敎를 가장 늦게 받아들여 法興王 15年(528)에야 佛敎가 公認되었다. 王國의 思想 統一의 要求와 王權 强化를 爲하여 護國的 性格을 띤 佛敎는 王室과 國家의 庇護로 次次 成長하게 되어 都城을 中心으로 佛塔의 建立이 크게 盛行하였다.1)1) 國史大事典, 敎育圖書, 1988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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