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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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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사극의 비유적 성향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대부분 형식을 가지거나 적어도 비유극의 범주 안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 실제로 「비유극」이라는 부제가 붙여진 작품은 『四川의 善人』(1941)과 『아르투로 우이의 막을 수 있는 상승』등 둘뿐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후기 작품들이 비유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브레히트는 『시몬 마샤르의 환상들』부터 『투란도트』에 이르기까지의 창작극에는 르 표기 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히틀러를 희화적으로 다룬 『아르투로 우이』는 애초에는 주해에만 비유극이라고 지칭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한결같이 비유극으로 취급하는 『코카서스의 백묵원』도 작가 자신은 비유가 아니라고 고집했다. 그밖에 주해 또는 해설에서 작가가 ‘비유극’․‘비아리스토텔레스적 휘곡문학으로서 비유 유형의 극작품들’ 따위로 분류한 작품은 『남자는 남자다』, 『둥근 머리와 뾰족 머리』이다. 망명 이전에 발표된 작품으로서 엄격한 의미의 비유극은 『남자는 남자다』에 국한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극’과 ‘비유극’을 대립개념으로 간주하여 후자에 비판적인 견해를 밝힌 한스 카우프만 등 과거 동독측 비평가들도 생소화극․서사극이 본질상 비유적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브레히트의 극작품 거의 전체를 비유극의 척도에 따라 분류한 뮐러는 역사극의 대표격인 『코뮌 시절』마저 비유극의 일부로 취급했다.
서사극이 특히 후기에 이르러 비유 형식으로 기울게 된 까닭은 ①작가의 외국 망명으로 인한 공연 가능성의 제약이 작품 구상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고, ②그러한 상황에 앞서 (또는 그와 더불어) 근본적으로는 서사극의 기본 원리인 생소화 효과와 관련, 사회구조에 관한 인식의 중개와 ‘비판적 자세’의 훈련이라는 영향미학적 관점이 작품 형식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1.1 망명과 비유극 형식의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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