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과 중세시대의 기독교 사상
중세시대(中世時代), 흔히 암흑시대(暗黑時代)라고도 불리는 아직 이 시기는 인문주의가 나타나기 이전인 ‘인간’이 아닌 ‘신’이 지배한 시대로써 인간의 이성, 철학 등은 도외시되고 오로지 ‘신학’만이 최고의 가치로써 인정받던 시대이다.
또 이 시기에 교회(敎會)는 서서히 싹이 트는 계몽주의(啓蒙主義)와 인간성(人間性)에 눈을 뜨는 인문주의적 신학(人文主義的 神學)으로부터 정형화(定形化)되고 형식화(形式化)된 교회(기독교)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북유럽 역사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리얼 바바리즘(Real Barbarism)'의 시대였다. 즉, 본래의 복음주의적(福音主義的)인 기독교 정신을 수도사들이 파괴한 시대였다. 교회는 이미 예수가 생존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조직으로 자라 있었다.
교회는 계서적(階序的)으로 조직화되어 Pope(교황), Archbishop(대주교), Bishop(주교), Parish Priest(하위 성직자) 순으로 그 계급이 나뉘어졌고 이미 귀족들과 다를 바 없이 영지를 가지고 있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세속(世俗)에 대한 어느 정도 영향력까지 행사하고 있었다. 교회는 더 이상 세속인들에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심어 줄 순 없었고, 이에 이단(異端)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단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자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몇몇 수도원들은 ‘수도원 운동’을 전개시켜, 교황 그레고리 7세가 주장한 기독교의 궁극적 사상인 ‘vita apostolica(사도적 고행생활)’을 추구하게 된다.
이 때, 사실 수도원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본래목적과는 달리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수도원과 세속인간에 엄청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려는 수도원의 움직임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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