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교회주의와 엘리자베스 시대
튜더왕조가 시작될 무렵에 유럽에서는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이 강성한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으며, 영국의 가장 좋은 교역상대국인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이 열강의 침략대상이 되었다. 튜더왕조의 헨리 4세와 헨리 7세는 열강의 세력균형을 도모하고, 공영권 확보를 위해 외교와 원정에 막대한 자금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신흥 중산 계급과 국회의 힘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국민으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두려는 정책을 펴면서,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 아이러닉하게도 가장 민주적인 세력의 성장을 가져왔다.
헨리 8세는 종교적인 면에서 큰 변화를 야기한 장본인이다. 그는 호화방탕한 생활을 하였고, 군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프로테스탄드 운동을 일으키자 이에 반대하여 『일곱 가지 성사의 옹호』(Assertion of the Seven Sacraments)라는 저서를 발표하여 교황으로부터 신앙의 옹호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스페인 공주였던 첫부인과 이혼하고 궁녀인 앤 볼린(Anne Boleyn)과 결혼하기 위하여 1534년에 자신이 영국국교회의 교황이 되는 왕위계승법을 통과시켰다. 로마의 카톨릭에서는 이혼을 금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이혼과 재혼을 위하여 그는 로마의 교회와 결별하고 영국의 교회를 만든 것이다. 그는 또 많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도원을 해산하여 그 재산을 몰수하고, 수도원의 토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새로운 영주를 임명했다. 또한 그는 해군을 창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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