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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저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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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저항문학
1. 서론
우리 근대문학은 한일합방(1910)을 전후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근대문학의 태동기에서부터 밀려드는 외세를 경험하여야 했고 마침내 식민지 상황이라는 치욕스런 현실을 맞이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저항’이란 우리 근대문학의 하나의 화두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탈식민지화의 핵심은 지리적 영토의 회복보다 문화적 영토의 회복이 선행되는 작업이라 하고, 식민지 체제의 모든 억압에 저항하여 공동 사회에 대한 감각과 의미를 구해 내거나 회복하기 위해 산산이 부서진 공동 사회를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에서 저항적인 지식인들의 역할을 강조하였다.1)1) 에드워드 사이드, 문화와 제국주의, 1995, 도서출판 창, P369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어 근대문학에서부터 가깝게는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저항문학은 우리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겨왔다. 이에 본고에서는 우리나라 저항문학을 개화기시기부터 해방 이후의 문학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고찰하여보고 그 특성과 의의에 대하여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2. 본론
1) 개화기 문학에 있어서의 저항의식
문호개방과 함께 서구와 일본이 한반도에서 노린 것은 영토확장의 야욕이었고 경제적 침략의 효과적 수행이었다. 이에 맞서 반제국주의 활동을 통해 국권을 수호하는 것이 우리 개화기 문학의 정신적 지주였다. 개화기 시가는 서구문화의 유입과 함께 형성되었는데, 1920년을 전후해서 출발하는 한국 근대시 이전까지의 개화사상이나 자주독립사상을 고취했거나, 아니면 구세력 내지 외세에 교묘히 편승하여 매국하려는 아첨배들에 대한 강렬한 저항정신을 구가한 노래들이 그 대부분이다.
한문학은 그 독자가 한정되고 표현이 난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남규의 「영흥잡영」,「삼전도탄」2)2) 청나라 황제의 조선침략을 기린 치욕스러운 비를 넘어뜨려 모래에 묻은 것을 보고 통쾌하게 여기면서도, 일본에게 핍박받는 상황에서 청나라에 대한 주체성을 회복하니 통탄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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