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희곡에 수용된 판소리 기법 및 성과
채만식은 현존하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적벽가>, <심청가>를 각각 <조조 1933>, <심봉사 1936> 등으로 희곡화했으며 그의 소설 가운데 <童話>, <흥보씨>는 각각 판소리계 소설인 <심청전>, <흥부전>을 교묘하게 변형시켜 당대의 현실을 형상화한 패러디로서 판소리와 채만식 작품간의 연계성을 입증하고 있다. 채만식은 당시 연극계의 무분별한 서구극 도입에 대해 비판하면서 우리의 고전극 중에서도 비교적 극다운 내용과 형식을 갖췄다고 생각한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판소리와 관련해서 발표한 희곡은 크게 판소리의 소재와 내용을 서구극의 근대 정신과 기교로서 작품화한 <조조>,<심봉사> 등과 판소리의 서사구조와 기법을 창작극에 수용한 <제향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판소리극의 기법과 정신을 한 단계 성숙하게 수용한 것은 <심봉사>에 이르러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심봉사>는 1936년 발표 당시 총독부의 검열에 의해 전문 삭제되어 당대에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말았다.채만식은 심봉사의 비극을 통해 국권을 잃어버린 당대 민족적 상황에 대한 비통한 속죄 의식을 우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심봉사가 자신이 딸을 죽인 죄인임을 깨닫고 마치 희랍 비극 <오이디푸스왕>처럼 자신의 눈을 손으로 찔러 다시 장님이 되어버리는 장면을 만들어냄으로써 딸(민족)을 팔아먹은 자신(매국노, 위정자)의 치욕적인 행위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항거의 직접적 표현이라고 볼 수있다. 채만식은 <심봉사> 7막에서 사실주의 연극에서는 드물게 쓰이는 시간 배열의 비약적 전개법(현재:궁중 장면-과거:승선 장면-현재:궁중 장면)을 통해 판소리 구조의 차용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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