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체성을 통해 본 한국의 근대성과 여성
1. 문제 제기
1990년대 한국 사회는 성담론이 무성했던 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서구의 성이론, 성문화, 성폭력, 매춘, 피임의 역사에 대한 번역서들이 잇달아 출간되더니, 1990년대 중반에는 여러 학회와 재단들이 성을 주제로 학술 대회를 개최했고, 각종 학술 계간지들은 성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대학 강좌 역시 성별 문제에 초점을 맞춘 ‘성과 사회’나 ‘여성학’을 넘어서서 ‘성과 문학’, ‘성과 철학’, ‘성의 심리학’, ‘성문화’ 등의 교양 과목들을 개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는 드디어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으로 성에 관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성을 강의하는 강사가 스타로 부상했다. 또 여성의 시각에서 성문화를 다루는 잡지가 출간되고 영화가 제작되었다. 또한 시사 주간지를 집어들어도 동성애, 청소년 성문화, 주부 매춘, 포르노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공식적인 채널에서만 무성한 것은 아니다.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성은 적어도 비공식 영역에서는 줄곧 ‘걸쭉한 입담’의 소재로, ‘와이담’으로, ‘음담 패설’과 ‘가십’의 형태로 일상에 밀착되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성담론의 특징은 성에 관한 한 무지와 침묵으로 순결 이데올로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화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여성과 청(소)년 집단의 성을 ‘사실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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