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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국가의성립과발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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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국가의 성립과 발전과정
(1)고대사회의 정치적 발전
고구려의 성립과 성립과정
고조선의 외곽지대였던 압록강 중류지역에는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철기문화가 보급되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하여 이 지역의 토착세력들은 고조선이 멸망하기 전부터 정치적 성장의 길을 밟아갔다. 주로 계곡이나 하천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나(那)’ 또는 ‘노(奴)’라고 불린 이들 집단이 고구려 국가 성립의 모체가 되었다. 고조선의 멸망과 함께 남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한의 군현이 설치되자 이 지역도 한떄 그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중국 군현의 하나인 현도군은 이 지역 토착집단의 정치적 성장을 억제하였다. 이에 따라 고구려족의 강력한 저항이 일어났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현도군은 기원전 75년 무렵 요동의 흥격(興京), 노성(老城)방면으로 근거지를 옮기고 말았다.
중국 군현을 몰아낸 뒤 이 지역에서는 다시 몇몇 유력한 ‘나’집단을 중심으로 정치적 통합을 이루면서, 좀도 규모가 커지고 조직화된 단위정치체제인 여러 개의 ‘부(部)’를 형성하였다. 그 결과 소노(消奴)라고 불리는 부를 비롯한 몇 개의 부가 중심이 되어 연맹체의 형태로 고구려 국가가 성립하였다. 초기에는 소노부가 연맹체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곧 북부여에서 이주해온 것으로 전하는 계루부(桂婁部)가 대두하여 고구려사회를 이끌었다. 이후 계루부는 연맹체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고구려 국왕의 지위를 독접하였다.
2세기 초반 태조왕 때에 이르러 압록강유역의 여러 ‘나’들은 계루부(계루부)․소노부(소노부)․절노부(절노부(절노부)․순노부(순노부)․관노부(관노부) 등 다섯 집단을 중심으로 통합되고, 그 중 계루부가 다른 네부를 강력히 통제하는 5부체제가 성립하였다. 각 부는 내부적인 문제에는 자치권을 갖고 있었으나, 대외적인 무역과 군사활동에 있어서는 고구려 국왕의 강력한 통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각 부의 지배층이 차츰 중앙의 귀족으로 전환해감으로써, 3~4세기를 전후하여 중앙집권적인 지배체제가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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