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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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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생애와 시>
김수영은 6․25를 거치면서 인간의 삶의 문제와 그에 대응하는 개인적 정서에 초점을 맞춘 시기, 4․19 기간의 감격과 좌절을 표현한 시기, 소시민적 삶의 비애와 존재의 문제를 탐구하면서 사회적 삶의 조건을 내면화한 시기로 논의할 수 있다.
*유아 시절의 환경
김수영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 시인이다. 그의 성장기의 주된 삶의 공간이 도시라는 점은 그의 시가 전통 서정시의 공간인 농촌이나 전원이 아닌 도시를 배경으로 적극 차용하는 모더니즘적 성격을 지니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그가 두 자식이 사망한 뒤 태어난, 병약한 맏아들이라는 점도 그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의 지나친 관심과 애정을 받음으로써 자아 중심적인 고집 불통의 성격을 갖게 된다. 그래서 후에 그가 이어령과 벌이는 참여시 논쟁이나 시론 등에서 강하게 표출되는 타협을 모르는 신념의 고수는 유아기의 환경이 주요한 인자로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유년기
김수영은 1921년 김태욱의 셋째 아들로 종로 6가에서 태어난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위로 형제들이 일찍 사망한 관계로 부모 형제들의 걱정과 근심 속에서 자랐다. 그가 남긴 사진을 보면 한 번도 그의 몸집에 살이 오르거나 건강하게 보이는 일이 없다. 다만 그의 크게 뜬 눈 만이 형형할 뿐이다. 그는 겁이 많고 외로운 아이로 자라났다. 어느 식구나 친구와도 다정하게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첫사랑
김수영은 [낙타과음] 이란 제목의 산문에서 나는 그 소녀를 따라 지금으로부터 약 십오년 전에 동경으로 갔었다. 내가 동경으로 가서 얼마 아니 되어 그 여자는 서울로 다시 돌아왔고, 내가 오랜 방랑을 끝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그는 미국으로 가 버렸다. 지금 그 여자는 미국 태평양 연안의 어느 대도시에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며, 영원히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편지가 그의 오빠에게로 왔다 한다.고 적고 있다.
*해방 직후의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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