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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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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광장’
역사의 폐허 위로 비가 내린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전쟁의 종결과 함께 용도폐기된, 그리하여 이제는 다만 아픈 기억의 처소로서만 남아 있는 이 시멘트 구조물의 잔해들은 5월의 비에 속절없이 젖고 있다. 비는 내려서, 지붕 없는 경비대장 막사의 채색 벽화를 적시고, 무도장의 시멘트 바닥을 흐르다가 틈새를 만나서는 슬쩍 스며들기도 하고, 채 스미지 못한 것들은 경비중대본부의 바닥에 처연히 고여 있기도 하다. 비는 내린다. 40년 저쪽의 먹빛 구름으로부터 막막한 세월의 허공을 가르며 내려와 시멘트로 굳어버린 기억의 땅을 두드린다. 비는 내린다. 땅은 젖는다. 풀은 자란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대한민국엔 자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유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북한 생활과 포로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중립국.
전쟁은 끝났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38선 전역에서 밀고 내려온 인민군에 의해 시작된 한국전쟁은 북조선과 유엔 사이에 체결된 협정이 발효됨으로써 1953년 7월27일을 기해 무기한 휴지에 들어갔다. 그와 함께 남북 양쪽은 전쟁기간 동안 잡아두고 있던 포로들을 교환했다. 교환하되 포로들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 남과 북 어느 한쪽을 택하도록 했다. 그러나 남이 아니면 북, 북이 아니면 남이라는 양자택일을 거부하고 남도 북도 아닌 제3의 나라를 택한 이들이 있었다. 최인훈(60)씨의 소설 <광장>에서 인용한 위의 대목은 판문점에서 있었던 송환심사에 나간 주인공 이명준이 공산군 장교와 나눈, 그리고 국군 장교와 나누는 것으로 상상하는 대화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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