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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 여순반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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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 여순반란사건)
◎ 10.19사건 경과 ◎
속칭 '여순 반란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정식으로 '10.19 사건'으로 개칭되었다.
이 사건은 제주도 '4.3항쟁'과 더불어 해방정국에서 발생한 최대의 민족사적 비극이었다. 이 사건은 여수/순천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기억하기 꺼려하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특히 여수 주민들은 여순 사건의 전개과정을 묻는 질문에 '당한것만도 지긋지긋한데 대답은 무슨 대답이냐' 며 질문을 회피하고 만다.
이 사건은 전대미문의 엄청난 인명피해뿐만아니라 사건 자체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충분한 평가작업이 이루어 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10.19사건'이나 '4.3항쟁'이 민족분단으로 치닫고 있던 역사적 과정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 민족의 비극이었다면 오늘의 조국분단의 상황은 그러한 비극의 연장선상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정치상황에서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다. 비록 40여년전의 일이지만 이 사건의 구체적인 전개과정과 실상에 대해서도 제한된 자료만을 접할 수 있을 뿐이다.
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국내자료들도 대부분 당시 집권세력이 남긴 한정된 자료뿐이며 그나마도 사건의 원인과 배경등 전모를 살피기에는 불충분하거나 부정확한 것들이다.
당시 국방부나 수도경찰청등의 자료에는 사건의 의미를 가능한 축소하려거나 진상을 은페하려는 집권세력의 의도가 적지않게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건이 종결되고 나서도 이 지방의 사람들은 명칭에서 오는 엄청난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한때 명칭에서 오는 잘못된 선입견을 벗겨보고자 '14연대 반란사건'으로 개칭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이제서야 '10.19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개칭이 된 지금, 이지방에 엄청난 고통을 준 이 사건을 재조명 해 본다.
◆ 10.19 사건전후의 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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