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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후반기 한국의 민주사상- 정약용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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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후반기 한국의 민주사상- 정약용의 사상
1.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자는 미용(美鏞) 또는 송보(頌甫), 호는 준암(俊庵) 또는 다산(茶山)이며 당호(堂號)는 여유(與猶). 28세 때(1789) 과거에 합격하여 10년 동안 관직생활을 했음. 정조(正祖) 사망(1800) 후 천주교의 확산을 구실로 남인계(南人係)에 대한 일대 탄압이 이루어진 신유사옥(辛酉邪獄: 1801년)에 연루되어 57세(1818)까지 18년간 강진으로 유배되었음. 이와 같은 장기간의 유배생활로 말미암아 홍대용, 박제가와는 달리 국제적 시야를 넓힐 기회를 갖지 못했으나 유배생활 때의 왕성한 저술작업을 통해 한국 실학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실학사상의 집대성자’로 평가되고 있음
2. 시대상황과 정치목표
정약용의 생존연대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임. 이 시기는 주자학적 정치질서관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조의 봉건질서가 그 내재적 모순을 더욱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던 시기였음. 즉 정치적으로는 정조(正祖)의 탕평책을 중심으로 한 왕권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권력층 내부의 분열과 갈등은 해소되지 못했고, 이러한 분열과 갈등이 1800년 정조 사후 노론(老論) 벽파(僻派)의 남인세력 제거를 목표로 전개된 신유사옥(辛酉邪獄: 1801) 및 김조순(金祖淳)을 중심으로 한 시파(時派)세력의 권력장악으로 이어져 결국 소수 권세가에 의한 권력독점 및 이익독점을 특징으로 하는 세도정치를 초래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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