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춘,_한번,_그렇게_보낸_가을_작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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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춘,_한번,_그렇게_보낸_가을_작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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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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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춘/ 한번, 그렇게 보낸 가을 작품론
불씨와 불길
김진량
1. 소년은 자란다

하여튼 그 때 아이는 어렸고, 전쟁이 한바탕 마을을 휩쓸고 간 뒤였다. 칠월이었고, 집 앞에서 바라보던 연두빛 호밀밭은 강물처럼 출렁거렸다. 만삭의 벼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을의 처녀들이 집을 나갔고 아이는 잠결에 오줌을 지리며 집을 비운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기차는 석탄가루를 날리며 마을을 지나갔다. 그 기차를 따라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가 떠꺼머리 고등학생이 되었다.
새벽밥을 지어먹고 기차를 타면 깜깜할 때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기찻길은 깨어지게 유쾌한가 하면 가난한 쓰리꾼의 일터이기도 하고 짙은 죽음의 그림자로 그늘져 있기도 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일상의 잔해들에 무심해져갈 무렵 아이는 시를 쓰고 있었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먹을 갈아 글씨를 썼고 먹 향내를 맡으며 아이의 시는 소설로 바뀌었다. 먹 향내 때문에 시가 소설이 된 것은 아니다. 기찻길이나 먹 향내가 한 고등학생을 문예반에 들게 하거나 우연히 출품한 소설이 당선되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예반과 상장들은 아이를 당연히 문학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이가 자라 쓴 소설은 구도잡힌 화선지 같다. 거기에는 아직 어렸던 때 아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눈부신 정서의 일점이 포착되어 있다. 어느 순간, 세계는 정지하고 애정의 촉수가 온 몸에 돋아나며 망막 너머 새하얀 음화 하나가 새겨지던 그 순간이 시공을 건너뛰며 화선지를 채운다. 그것은 어쩌면 겨울나무 가지의 끝이 허공과 만나는 그 접점을 그리고 싶어 고심하는 화가의 욕망과 비슷하다. 먹을 갈아 글씨를 쓰던 아버지는 은연중 아이의 눈을 훈련시켰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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