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어거스틴의생애와사상
|
|
|
|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어거스틴의 사상은 논쟁 속에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마니교와의 논쟁에서 그의 죄론이,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 그의 은총론이,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에서 그의 교회론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철학자로서는 서양의 스승으로 불리고 있다. 어거스틴의 사상은 교부철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힐쉬베르거에 의하면, 중세철학에 교부철학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말은, 중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가 계속해서 살아 있고, 계속해서 작용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거스틴은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교 철학의 기둥들 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스라엘 종교와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실존적 상황에서 발전된 종교라 할 수 있다. 언제든지 그 상황 안에서 문제의 해결을 보려고 했다. 그러나 희랍철학은 정반대의 경향을 가졌다. 현실과 실존은 일시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거기서 어떠한 항구적인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희랍철학은 이 현실과 실존을 떠나서 그 위에 있는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것에서 문제의 해결을 발견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교부(敎父)들 가운데는 이 양자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알렉산더 학파가 그러한 시도를 했는데, 클레멘트(Clement)와 오리겐(Origenes)과 아리우스(Arius)등이 그러한 사람들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희랍철학적인 신(神) 이해와 인간이해가 그리스도교 신학에 침입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을 통해서 도입된 플라톤주의가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경향이었던 실존적 복음 이해를 소홀히 하므로써 그리스도교 신학은 본질적인 면을 더 강조하는 추상적 신학으로 기울어져 갔다. 이러한 경향을 더 촉진시킨 것이 동방교회의 신학자들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거스틴이 나타났는데, 그는 이러한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신학의 방법론을 제어하고 실존적인 신학을 형성한 교부라고 할 수 있다.
1) 어거스틴의 어린 시절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