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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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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序說
우리민족이 일제의 강압과 압제에 못이겨 억지로 한일합방이라는 명목하에 그들의 지배에 들어가게된 1910년. 그때부터 1945년 8월15일 광복이 이루어지기까지에는 끝없는 의병들의 투쟁, 독립협회의 활동, 윤봉길 등 수많은 의사들의 피와 눈물이 대가로 치뤄졌던것을 우리는 알고있다. 합방전까지는 격렬한 의병항쟁이 동학을 매개로 각지에서 떨쳐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3.1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비밀 지하운동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대토벌로 의병항쟁은 큰타격을 받았으며 합방 직후에는 신민회사건으로 민족 지도자들이 투옥 감금되어 버림으로써 국내에서의 항일운동은 깊이 음성화되어 비밀 지하운동의 성격을 띄어갔다. 그 결과 이들 지하 비밀 항일결사들은 상호 연결이 되지 못하고 고립되어 독자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3·1운동이 일어나기전인 1910년대에 우리민족은 국내 그리고 국외에서 어떤 민족운동을 벌였으며 그 운동들의 의의는 무엇이었는가라는 문제를 우선적으로 파악한후에야 3·1운동은 과연 일제강압하에서의 우리민족에게 어떤 가치가 있었는가를 얘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II. 本文
1. 1910년대 국내에서의 민족운동
1) 의병투쟁
한말에 전국적으로 봉기하였던 의병은 강력한 일본군의 수비대와 헌병 경찰의 공격으로 1910년대에 이르는 사이에 그 기세가 꺾여져서 수적으로 크게 줄어들고 활동범위도 좁아져 갔다. 특히 1909년 9월부터 약 2개월간에 걸쳐 실시된 일본군의 남한지역 대토벌작전으로 남부지방의 의병부대는 대타격을 받아 합방무렵에는 국내에서의 항전이 거의 불가능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1911년 이후에는 과거의 의병활동이 활발하지 못했던 황해도·평안도지방에 회수는 많지 않으나 의병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것은 남부지방의 의병부대가 북상한 점도 있으나 뒤늦게 의병활동대열에 가담한 것으로서 자못 주목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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