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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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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임진왜란의 배경 경과 결과
2.이순신과 임진왜란
1)세계최초의 철갑선 거북선의 건조
2)해전의 대승첩(부산해전)
3)한산도 생활
4)억울한 누명을 쓴 죄인의 몸
5)명랑해전의 대승리
6)충무공의 최후(노량해전)
3. 아직도 그치지 않는 이순신 죽음의 논란
4. 아직 끝나지 않은 임진왜란
1.임진왜란
1592년(선조 25년)에서 1598년(선조 31년)까지 2차에 걸쳐 왜군이 우리 나라에 쳐들어온 싸움. 임진년에 일어났다 하여 임진왜란이라 하며, 정유년에 또다시 쳐들어온 싸움을 따로 정유재란이라고 한다.
▶ 배경
조선은 선조 때에 접어들어 양반들이 당파 싸움을 일삼으면서 국방을 소홀히 하였다. 이이(李珥)가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여 국방의 중요성을 역설해도 도리어 지배 계급들은 배척하는 실정에 있었다. 그처럼 조선이 안일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일본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와 혼란기를 수습하고, 전국을 통일하여 봉건적인 지배권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도요토미는 국내 통일에 이용한 제후들의 힘을 밖으로 돌려 자체의 불안을 없애려 했다. 특히 당시 유럽에 의해 발전한 신흥 상업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대륙 침략을 꿈꾸게 되었다. 그의 처음 의도는 조선과 동맹을 맺고 명나라를 침공하자는 데에 있었다. 조선에 서신을 보내어 통신사를 보낼 것을 요구해 왔다. 무례한 구절이 있어 거절했으나 재차 교섭이 와서 황윤길과 김성일을 보내어 그들의 속셈을 살폈다. 그러나 두 사신의 보고는 상반되어 조정의 대신들도 의견이 엇갈렸다. 황윤길은 서인(西人)이고 김성일은 동인(東人)이라 감정이 대립된 것이다. 결국 조정은 일본의 침략을 예상하는 황윤길의 보고를 무시하고, 김성일의 의견을 따르게 되어 국방을 소홀히 했다. 늦게서야 일본의 대륙 침략 계획을 알아 낸 조정은 요충지인 영남(경상도)에 힘을 기울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다만 전라 좌수사 이순신만이 전쟁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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