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스라엘의 역사
|
|
|
|
성경은 지금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었다. 예수님의 승천 후, 그 당시에는 사도들이 살아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칠십명의 제자들을 파송했던 그 제자들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전하는 예수님에 관한 말들이, 설교들이 지금의 우리가 성경을 받아들이는 태도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해지는, 정경으로서 인정될 수 있는 기준은 사도들의 권위였던 것이다. 사도들이 썼으며 사도들이 인정하는 글-예를 들어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 그리고 사도행전과 같은-은 많은 신약의 성도들에게 읽히게 되었고 그것이 2세기이 접어들어서는 지금의 성경의 삼분의 일이 복음을 증거하는 정경으로서 인정되어졌다. 그리고 약 5세기에 접어들어 나머지 삼분의 일이 정경으로 인정되어졌던 것이다.
이와 시기를 같이하여 기독교가 국교로서 위치하게 되고 그 해석상의 문제 역시 철학과 결부시켜 해석하는 것이 유행되어지게 된 것이다. 그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한 부분이었으며 생명과도 같았던 성경이 해석상 달라짐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인의 삶과 일치되기보다는 오히려 삶과 동떨어진 이론상의 한 철학으로 그 성향이 바뀌었던 것이다. 조직신학을 아는 분들은 그 조직신학이 성경을 이해하기보다는 이단을 배격하기 위하여 또는 철학자 개인의 목소리를 중요시하는 성향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성경은 그리스도인과 멀어지고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주교들의 성경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당시의 성경은 그들의 삶과 매우 일치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도 알 수 있지만 당시의 저자들이 읽고 이해하며 그 와중에 그리스도를 주로서 고백하여 순교에 이르는 신앙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방인들도 이러한 성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성경의 저자가 그 대상을 이방인을 위해 쓴 것도 있기 때문이다.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