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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친일파의 형성배경 및 행동양태와 해방 이후의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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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친일파의 형성배경
및 행동양태와 해방 이후의 진로]
<1.일제 시기 親日派의 형성 背景>
①親日派 養成
3.1 운동후 ‘문화정치’가 기도한 민족 분열 정책은 새 친일파 양성 정책으로 나타났다.일본은 ‘합방’전에도 이미 일본 유학생,정치 망명자 및 고급 관리의 일부를 협박 매수하여 친일파로 만들고 이들을 ‘합방’과정에서 적절히 이용했다.그러나 ‘합방’후에는 이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식민지 통치에 참여시키고 그 밖의 대부분은 실권 없이 ‘우대’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3.1운동이 폭발하자 당황한 일본은 친일파들을 앞장세워 사태 수습에 이용하려 했다.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전혀 효과를 거둘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3.1운동의 열기 속에서 오히려 그 일부가 친일 대열에서 이탈하여 친일 세력이 약화되었다.‘합방’때 이용한 친일파만으로는 3.1운동 후의 식민지 통치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게 된 일본은 새로운 친일 세력을 양성함으로써 식민지 통치에 이용하고 독립운동 전선을 분열시킬 정책을 세웠다.
3.1운동 후에 폭탄 세례를 받으며 부임한 총독 재등실은 ‘조선 민족운동에 대한 대책’을 구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친일파 양성책을 고안했다.
첫째,일본에게 절대 충성을 다하는 자로써 官吏를 강화한다.
둘째,신명(身命) 을 바칠 친일적 인물을 물색하고 이들을 귀족.양반.유생.부호.실업가.교육가.종교가 들에게 침투시켜 친일 단체를 만든다.
셋째,각종 종교단체에 친일파로 하여금 최고 지도자가 되게 하고 일본인을 고문으로 앉혀 어용화한다.
넷째,친일적 민간인에게 편의와 원조를 제공하고 수재 교육의 이름 아래 친일적 지식인을 대량으로 장기적 안목에서 양성한다.
다섯째,양반 유생으로 직업이 없는 자에게 생활 방도를 만들어 주고 이들을 선전과 민정 정찰에 이용한다.
여섯째,조선인 부호에게는 노동쟁의,소작 쟁의를 통해 노동자.농민과의 대립을 인식시키고 또 일본 자본을 도입시켜 그것과의 연계를 맺어 매판화시켜 일본측에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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