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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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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 丁若鏞의 生涯와 思想에 대하여
-湯論을 中心으로 보이는 丁若鏞의 民權意識에 대하여-
-目 次-
其壹. 緖論
-丁茶山 民權意識에 觀心을 가지는 理由-
其貳. 本論
壹. 丁若鏞의 生涯
壹>修學時節(출생~1789년, 28세)
貳>仕宦時節(1789~1800, 39세)
參>流配生活(1801~1818, 57세)
四>鄕居生活(1818~1836, 75세)
貳. 丁若鏞의 民權意識에 대해서
-國政參與 主體로서의 民과 抵抗權의 容認에 대해서-
參. 茶山 民權意識의 限界에 대해서
-民本意識 속에서의 民權意識-
其參. 結論
-湯論을 中心으로 본 茶山 民權意識의 評價
其壹. 緖論
-丁茶山 民權意識에 觀心을 가지는 理由-
조선왕조의 전근대적 통치체제는 19C 전반기를 거치면서, 그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조선왕조가 근간으로 삼았던 신분제는 이미 그 수명을 다하여서 붕괴하고 있었다. 이 같은 변화는 일반 백성들의 권리의식을 진작시켰다.
우리가 흔히 근대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판단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신분제’ 에 관한 것이다. ‘신분제’ 는 대다수 민중들의 권리행사가 어떠했는가를 재는 척도이다. 민중의 권리행사가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근대에 가까운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丁若鏞은 조선왕조의 격변기에 태어나 그 변화의 과정을 몸소 겪은 사람이다. 그는 전근대적 통치체제의 모순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이었으며,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한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제반이론은 당시로는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그것은 17C 이후 국가재조의 사유에서 나오는 실학을 집대성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5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저서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였으며, 그 안에는 조선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거대한 사유가 들어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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