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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과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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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과 폭력
1.
물론, 컨텍스트는 텍스트를 강제한다. {진보평론}이라는 매체는 텍스트에 대한 신중한 자기 검열을 할 뿐 아니라, 글쓰는 이를 강제한다. 우리 담론 세계에서 '신학'은 종교 담론 가운데서도 유별나게 게토화된 담론이다. 속된 표현으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이다. 우리 전통 속에서 불교나 유교 담론은 그 종교-사상적 망탈리테가 천오백여년 동안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종교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인문/사회계의 매체에 게토화된 기독교 담론을 끼워넣는 자리가 주어지면 하늘이 노래진다. 출발지점도, 전문성의 경계도 오리무중이다. 독자가 신학의 개념이나 학문으로서의 기본 틀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 난감해지는 것은 서구의 [문학]비평과 해석학의 뿌리와 역사가 모두 성서 읽기와 전통 이해에 토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비평과 해석을 끌어들이고 있는 우리 담론에서는 그 전통이 몽땅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있는 것을 볼 때이다(물론 최근에는 현대 비평이론과 해석학에 신학이 빚을 지고 있기도 하지만).
오늘 한국 기독교의 현상형태와 신학이 서로 적대적인 상황에서 일반 담론계로부터의 신학의 '소외'를 문제삼는 것은 구차스러운 일이다. 교회와 제국주의의 상관성을 거론하지 않고서 어떻게 지난 100년의 우리 문화를 되돌이켜 볼 수 있겠는가! 서양 문화와 우리 문화라는 접경 속에서 한국 기독교 문화라는 화두를 배제시키고 어떻게 설득력 있는 설명이 가능하겠는가1) 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고,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기독교의 의미를 묻는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과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겠지만, 오늘의 민중해방적 실천과 '새 하늘 새 땅'의 희망을 견인해내는 데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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