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의 북한의 체제는 남한에 비해 보다 진보적이었나
해방직후 북한의 정치는 <지방정치의 활성화>와 <중앙의 부재>로 요약될 수 있다. 인민위원회, 농민조합, 노동조합, 그리고 여타 단체들이 어디에나 조직되었고 그것들의 정치적 성향은 좌익을 띠고 있긴 했지만 각기 크게 달랐다. 대개 북한의 각 도는 도인민위원회가 존재하여 자체의 정책과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지도할 중앙은 부재했다.
북한에서 중앙권력의 시초는 북조선 5도행정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지역적 기반에 따라 각도의 인민위원회가 가지고 있었다.
북한의 중앙집권화는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의 설립으로 본격화되며 김일성은 임시인민위원회 의장으로 지명되었고, 공산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었다. 통일적인 중앙권력이 들어선 직후, 김일성은 일련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중앙의 권위를 지방에까지 확산시켰고, 중앙권력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며 중앙집권화를 완성해 냈다.
이 이후 북한은 여러 가지 토지 문제, 그리고 사회 개혁의 실행에 있어서 남한보다 보다 진보적인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우선 토지개혁에 대하여 살펴보자.
북한은 대체로 산악지대와 고원이 많아서 논에 비해 밭이 큰 비중을 점하며 화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남한에 비해 지주의 토지소유율이 낮았다. 하지만 남한과 같이 지주적 토지소유가 지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출범한 후 3월 5일 17개조의 <북조선 토지개혁법>을 제정공포하고, 6일 6개장 24개항의 <세칙>을 발표하여 본격적인 토지개혁에 들어갔고 3월 말쯤에 토지개혁이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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