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에 대한 단상
1. 지난 10월 24일 저녁, 교육방송은 50년 문자 전쟁:한글 전용 대 한자 혼용이라는 제목으로 생방송 토론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옮겨다니다 우연히 마주친 프로여서 처음부터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지루해하는 둘째아들 녀석의 표정을 모른 체하고 토론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채널을 교육방송에 맞춰놓은 것은 당초 그 주제가 흥미로워서는 아니었다:토론자로 출연한 분들 가운데 아는 얼굴들이 비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 프로를 끝까지 지켜본 것은 토론이 어떻게 전개돼 어떻게 마무리될지가 이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50년간 그랬듯, 이날의 토론도 어느 한쪽의 승리로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양쪽의 의견은 줄곧 평행선을 그었고, 우리가 채택해야 할 서기 체계에 대한 두 견해는 그대로 교육 문제에까지 투영되었다. 즉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이들은 죄다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내놓았고, 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이들은 예외 없이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내겐 그것이 좀 신기했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 한글만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왔고, 또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되도록 일찍부터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어설픈 절충론이라고 핀잔받을 만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논리적 모순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게는 한글 전용과 한자 교육이 서로 길항하지 않는다. 그 문제말고도 그 프로는 내게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 글은 그때 떠오른 단상들을 두서없이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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