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과 아시아 영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1945-1952)
이탈리아의 영화산업은 정부에 의해 강력하게 통제. 조정되었으며, 무솔리니는 별 능력 없는 자신의 몇몇 관계자들을 그 자리에 임명할 수 있는 비교적 무해한 영역으로써 영화산업을 이용하였다. 선전용으로 극영화를 사용하려는 몇 번의 성공적이지 못한 시도이후, 파시스트들은 관객들이 그것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대신에 당국은 영화가 현실에 대한 것이면 무엇이든 중요한 진술을 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에 만족하게 되었다. 인기 있는 영화화된 오페라, 풍속 멜로드라마, 그리고 로맨스가 있었다. 후자와 같은 유형은 '백색 전화 영화'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사치의 모습이 전화기에 대고 애인과 정답게 말을 주고받으며 화려한 침대 위에 실내복 차림으로 비스듬히 기댄 채 권태로와 하는 여자 주인공의 형태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주요 감독으로는 로베르토 로셀로니(Roberto Rossellini),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루치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를 들 수 있다.
로셀로니는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재원을 끌어 모아 1943년에서1945년 사이에 비밀리에 영화-<무방비 도시 Open City>(1945)를 만들었다. 그들은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없었고, 거의 모든 장면들은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심지어 전쟁시의 전력 공급은 매우 불규칙적이어서 노출을 일관성 있게 지속시키는 것이 계속적인 문제 거리였다. 기술적이고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무일푼이 된 로셀로니는 28000달러에 판권을 팔았다고 하는데, 이 영화는 미국에서만도 5백만 달러의 총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이후 그는 <전화의 저편 Paisan>(1946)을 선보였다. 그는 페데리코 펠레니를 포함한 일단의 작가들의 도움으로 자신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애써서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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