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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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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는 민족사관의 모태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본거지
“배달민족으로서 대종교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나라는 비록 망했으나 정신은 가히 존재한다.”(國雖亡而道可存).
이 말은 홍암(弘巖) 나철(羅喆·1863∼1916)이 단군신앙 중흥의 명분으로 내세운 가치다. 국망(國亡, 일제의 강점)이라는 절망감 속에서 도존(道存, 단군신앙의 부활)으로써 미래의 희망을 세우자는 뜻으로, 그 구체적 방법을 1909년 대종교의 중광(重光, 다시 일으킴)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대종교의 중광은 절망적 현실 속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북돋운 일대 사건으로, 우리 민족사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왔다. 역사 속에 침잠됐던 단군신앙의 부활을 통해 당시 주권을 잃어버린 암울한 민족사회 전반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민족정체성의 무너짐 속에서 방황하던 수많은 우국지사와 동포들에게 정신적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다.
특히 국망(國亡)이라는 수모를 당하게 된 역사적 원인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함께 도존이라는 정신적 일체감을 통한 치유 방안을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국학(國學) 중흥의 당위적 방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홍암은 창교(創敎)가 아닌 중광(重光)을 선택함으로써 단군신앙의 원형인 선교(仙敎) 혹은 신교(神敎)의 계승 의식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동학의 최제우(崔濟愚·1824~64)나 증산교의 강일순(姜一淳·1871~ 1909)처럼 창교주로 화려하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군교에 입교한 일개 교인으로서 단군신앙의 연결자로 스스로를 낮추었던 것이다. 이것은 몽골 침입 이후 700여 년간 단절되었던 배달민족 고유 신앙의 부활로, 홍암이 민족사적 명분 앞에 개인의 욕심을 기꺼이 양보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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