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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사회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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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사회와 문화
중국 역사상 당(唐)·오대십국(五代十國)에 이어지는 왕조(960∼1277).
당나라가 쇠약해진 틈을 타 절도사였던 주전충에 의해 당이 멸망하자 황하유역에는 5개의 왕국이 그 남쪽에는 10개의 크고 작은 나라가 일어나 어지럽게 다투어 흥하고 망하기를 거듭하였는데, 이때의 중국을 5대 16국이라고 한다. 이중 후주의 조광윤은 중국의 지배자가 되어 카이펑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송 이라고 하였다. 황제가 된 조광윤은 제일 먼저 군인의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문치주의를 근본 방침으로 삼아 과거제도를 개혁하고 문신을 우대하였으며 절도사의 권한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치주의는 국방력의 약화를 하져와 수많은 북방민족의 침입에 시달리게 하였다. 그것을 스스로 지킬 힘이 없던 송나라는 재물을 바쳐 비위를 맞추는 식으로 외적의 침입을 피해야 했다.
게다가 방대한 관리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으므로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에 허덕이는 생활을 해야했다.
왕안석의 변법은 이와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주장되었다. 변법은 대상인과 지주를 누르고 상공인과 소농민을 보호하여 생산력을 증가시킴으로써 국가 재정과 국방력을 강화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마광을 비롯한 대지주, 고리 대금업자, 대상인을 대표한 세력들의 반대로 인해 중지 되고 말았다.
한편 송나라는 건국과 함께 이미 북방쪽에 강력한 적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중 가장 세력을 가진 족속은 몽골 계통의 거란족으로 야율아보기 가 주변의 부족을 통일시키고 나라를 세워 요나라라고 불렀다. 요나라는 여진족인 금에 멸망되기 전까지 200여년 동안 끊임없이 송나라를 괴롭혔다.
그래서 요, 서하와도 전연의 맹 이라는 조약을 맺어 조공을 수 없이 바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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