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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 서경덕의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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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의 성리학
花潭은 고려의 수도이었던 松都 출신으로 일생을 처사로서 사색적인 생활을 하였고 晦齋는慶州 출신으로 관직에 나가기도 하였으며 저술한 것도 많다. 화담은 主氣的 경향이 있는데 반하여 회재는 主理的인 경향이 있었다. 당시 경기와 영남을 대표하는 두 학자는 조선 성리학의 전성기를 인도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화담의 학문은 뒤에 율곡의 사상에 영향을 주어 栗谷이獨得自得之味가 있다고 하였으며, 회재는 퇴계의 학문에 영향을 주어 退溪가獨得之妙가 있다고 하였다.
1. 서화담의 사상
1) 화담의 생애와 학문 경향
花潭은成宗 20년(서기 1489년)에松都禾井里에서 출생하였다. 이름은 敬德이고 字는可久이며 화담이라는 호 외에 復齋라고도 하였다. 18세에 大學의致知在格物條를 읽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 학문을 하는데 格物을 먼저 하지 않으면 독서는 하여서 무엇을 하겠는가 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중요한 학문적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천지 만물의 이름을 적어 벽에 붙여놓고 매일 그 이치를 궁리하여 탐구하였고 사색과 궁리를 하여 얻은 것을 다시 독서를 통하여 확실하게 하였다.
그는 나는 스승을 얻지 못하여 노력을 많이 하였다. 후인들이 나의 말을 따르면 나같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리라. 고 하였다. 이를 통하여 보면 그의 학문은 독학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는 모친의 명을 따라 진사시를 보아 합격을 하였으나 곧 과거공부를 포기하고 개성 화담에 살며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였다. 중종 말년(1544년)에 후릉참봉으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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