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천하의 갑신정변
리포트 > 인문/어학
3일 천하의 갑신정변
한글
2011.04.25
9페이지
1. 3일 천하의 갑신정변.hwp
2. 3일 천하의 갑신정변.pdf
3일 천하의 갑신정변
3일 천하의 갑신정변

1884년 12월 4일. 음력 시월 열이레의 둥근 달이 서울 전동(典洞)의 우정총국을 비추고 있다. 이밤, 느닷없이 치솟는 불길이 역사의 한 순간을 그을린다. 갑신정변의 시작이었다. 우정총국은 이날 밤 초대 총판(總辦·대표) 홍영식이 주최하는 낙성식 축하파티로 흥청거렸다.

서울에 주재하는 외교관들과 정부 대신들이 각기 다른 꿈의 축배를 올리고 있다. 1876년 일본과 첫 수교를 맺은 이후 조선의 문에는 더 이상 닫아 걸수 있는 빗장이 없었다. 1882년 미국과 영국·독일에 잇달아 문을 열었고 1884년에는 이탈리아·러시아와 국교를 튼 그때의 조선은 지난달 칠레와 사상 첫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오늘의 한국을 연상시킨다.

지금, 미군기지가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는 용산이 바로 그해 8월 일본의 요구로 외국인을 받아들일 ‘자유 지대’(開市場)로문 열었던 것은 역사의 우연이기만 한 것일까.

1883년 인천항을 개항하고 이듬해 봄 부산과 나가사키 간 해저 케이블을 막 개통했을 정도로 조선은 급박한 개방의 물결을 타고 있었지만, 정작 나라를 어디로 끌어갈지에선 개화당과 수구당이 ‘속도’와 ‘폭’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양반이 상업에 종사하는 것과 상민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 겨우 2년 전인 1882년 말의 일이었다. 근대의 빛은 아직 어둠 속에 있었다.

▲ 1883년 말, 미국 방문 길에 나선 민영익과 개화파 일행이 일본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이렇게 함께했던 이들은 일년 뒤 개화의 속도와 방법론을 놓고, 동지에서 적으로 갈라서게 된다. 앞줄 오른쪽에서 둘째부터 서광범·민영익, 맨 왼쪽이 홍영식.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에 유길준이 보인다. 앞줄에 보이는 어린이는 당시 게이오 의숙에 유학 중이던 박용화다.

“군(君)은천(天)을 아는가.”
....
갑신정변에 대한 비판적 고찰 우리나라매스미디어의발전과정
박영효,박영효인물분석,인물분석,과부재가론,축.. [한국근현대사] 19세기 사회변동과 동학사상
근대변혁운도의 발생과 발전 갑신정변에 관한 역사적 평가
이인직은세계총평 개화사상·갑신정변·갑오개혁에 대한 연구현황과..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역사(근현대) 한국근대사개설중간보고서
근대화 시기의 사건 한국사-개항,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신정변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독후감 감상문 서..
 
노인과 바다 독후감 - 노인과 ..
위대한 개츠비 소고
인간성격이론에 따른 자기 분..
영어 영문 - 흑인 영어[black ..
17-19세기 동아시아 삼국의 사..
정조의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