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역사와 문화 (바이마르 공화국 1919-1933)
◎바이마르공화국의 시대 (1919-1933)
독일혁명
비스마르크의 통일 이후 독일 제정의 후진성은 자본주의 국가로의 고도성장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봉건적 구조가 보존되고 시민계급이 성장치 못한 것이 기인하였다. 융커와 자본가의 독점관료체제가 그 주된 원인중에 하나이다. 1912년 제국의회의 선거를 통해 나타난 노동자 계층을 대변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요구하는 개혁세력의 강력한 대두는 군국주의적인 독일 제국이 위기에 빠졌지만 1차대전으로 겨우 모면하였다.
총력전으로 버텼던 대전의 패배에 따라 1918년 8월 이후, 독일인은 심각한 의, 식, 주 문제에 봉착하고 삶 자체에 커다란 불안감을 느껴야만 하였다. 이러한 국내적 동요는 침략적 군부세력과 민주적 개혁파(의회다수파)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전쟁기간 동안 독일인은 자국의 제국주의적 전쟁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급진적 개혁파와 혁명파들은 달랐다. 1916년 6월 급진파 스파르쿠스단의 지도자 K. Liebknecht 립크네히트는 노동자 스트라이크를 통해 7월 베를린등 총파업을 주도하여 4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조속한 민족자결에 의한 강화조약과 민주적 개혁 및 징병제도의 전폐등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또한 1918년 10월 Kiel 킬에서의 수병반란이 일어났다. 그들은 상부의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노동자세력과 연대하여 4만명의 무장시위대로 발전하여 병사평의회(소비에트식)을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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