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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욱트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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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욱트라 전투
B.C 371년
개요
그리스의 패권을 두고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맞대결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
스파르타의 승리로 돌아감으로서,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이어 그리스의 맹주가 된다.
그러나 전쟁의 휴유증과 농업경제 체제를 벗어나지 못한데다, 스파르타의 군국적 보수주의는 동맹국들의 강한 반발심을 불러 일으켯고, 이것을 빌미로 코린트와 보이오티아, 아테네, 아르고스가 페르시아의 후원을 얻어 동맹을 결성, 코린트 전쟁을 일으킨다.
이에 스파르타는 안탈키다스 장군을 내세워 B.C 386년에 페르시아와‘안탈키다스 화약’을 맺고 페르시아 대왕의 힘을 빌려 이 전쟁을 종결시켰다.
그리고 그 대가로 소아시아의 그리스 식민도시를 페르시아에 넘겨 주는 등의 행위를 자행한데다, 스파르타는 B.C 385년∼379년의 시기에 그리스 전역에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로 오만하게 외교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는 당연히 다른 도시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B.C 379년부터 테베는 점점 강성해지며 스파르타의 패권을 위협해왓고, 이에 스파르타는 지속적으로 테베를 공격하엿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엿다.
그 사이 아테네는 잃어버렷던 제해권을 점점 되찾아 오기 시작하엿고, 또한 스파르타의 공격을 착실히 막아온 테베는 보이오티아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여 B.C 375년에 거의 옛날 수준에 가깝게 보이오티아 연맹을 재건하였다.
B.C 371년 스파르타 평화회의에서 보이오티아 연맹 문제로 스파르타와 테베가 충돌하였다. 원인은 보이오티아 연맹을 해체하라는 스파르타의 요구를 테베가 거절한 것이엇다.
이로 인해 클레옴브로토스왕이 이끄는 스파르타군과 에파미논다스가 이끄는 테베군이 남보티오이아의 레욱트라 평원에서 부딪혔다.
대치
스파르타군 - 보병 1만(스파르타 시민군 1천 8백),기병 1천
테베군 - 보병 6천(신성대 3백), 기병 6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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