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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형성 및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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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형성배경과 행동양태 및 해방이후의 행적
[서론]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독립을 맞이한 이래로 오십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지만 친일파문제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로서 여전히 화두가 되고 있다. 친일파(親日派)란, 직역하면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무리라는 뜻으로 민족을 저버리고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정책에 협력했던 반민족 범죄자들이라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정의하고 있다.
민족을 배반하고 일본의 편에 서서 식민지배정책에 앞장섰던 친일파들, 이에 우리는 친일파의 형성배경 및 행동양태와 해방이후의 진로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본 후 매국역적의 대명사이며 범죄와 악한을 상징하는 일반명사로 취급될 정도로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을 한 사례로 친일파의 삶과 친일행동들을 살펴보려 한다.
[본론]
Ⅰ. 일제시기 친일파의 형성배경 및 행동양태 와 해방 이후의 진로
1. 일제 시기 친일파의 형성 배경
① 친일파 양성
3.1 운동후 문화정치 가 기도한 민족 분열 정책은 새 친일파 양성 정책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합방 전에도 이미 일본 유학생, 정치 망명자 및 고급 관리의 일부를 협박 매수하여 친일파로 만들고 이들을 합방 과정에서 적절히 이용했다. 그러나 합방 후에는 이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식민지 통치에 참여시키고 그 밖의 대부분은 실권 없이 우대 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3.1운동이 폭발하자 당황한 일본은 친일파들을 앞장세워 사태 수습에 이용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전혀 효과를 거둘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3.1운동의 열기 속에서 오히려 그 일부가 친일 대열에서 이탈하여 친일 세력이 약화되었다. 합방 때 이용한 친일파만으로는 3.1운동 후의 식민지 통치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게 된 일본은 새로운 친일 세력을 양성함으로써 식민지 통치에 이용하고 독립운동 전선을 분열시킬 정책을 세웠다.
3.1운동 후에 폭탄 세례를 받으며 부임한 총독 재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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