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세계
한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대체로 三國 鼎立 이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중국내 정치판도의 변화에 따른 지식인들의 이주는 빈번했을 것이며 이에 따라 한자도 전래되었을 것이다. 한반도가 漢文化圈 내의 국제관계에 들어간 삼국시대로부터 한자의 사용이 본격화되었고 이는 한자가 국제사회에의 진입을 가능하게 한 요인임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의 사용은 한문화권내의 어느 나라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국가적, 문화적 역량과 위치를 보여주는 역할을 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삼국시대에는 국사를 기록하고 영토를 확장시킨 국가의 위업을 알리는데 한자의 공용적인 역할이 두드러졌다. 한문화권 내에 정치적인 대립이 끝나고 신라․ 발해․ 당․ 일본 간에 사신들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자는 공식적인 필요에서 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자리에서 시를 창화하는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고 이를 통해 신라, 발해의 문인들은 문화적인 역량을 과시하면서 문명세계에 함께 속한 긍지를 가졌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한문학 작품들이 어떤 면에서는 국문학 작품보다 우리 민족의 삶과 체험을 한층 더 절실히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글 창제 이전에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문학 갈래를 통해 시대상황을 예리하게 재현하고 비판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데에서 드러난다. 더욱이 한국한문학은 共同文語를 사용했으면서도 중국 또는 일본 한문학과는 다른 독자적인 민족문화적 특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 최치원의 [江南女]
강남땅은 풍속이 방탕하여
딸 기르되 예뻐하고 귀여워만 해
되바라져 침선 따윈 부끄러하고
화장한 뒤 악기나 연주하지만
배운 바는 우아한 음악이 아니고
대부분 春情을 꼬여내는 것
스스로 이르기를, ‘이 고운 얼굴
청춘을 길이길이 누리겠다‘며.
도리어 비웃네, 이웃 여자가
아침 내내 베틀을 놀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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