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에 대한 연구
1. 장보고란 누구인가
일명 궁복(弓福)·궁파(弓巴). 일찍이 당나라 서주(徐州)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武寧君小將)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간 노비(奴婢)의 비참한 처우에 분개하여 사직하고 귀국했다. 해적들의 인신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해 왕의 허락을 얻어 1만의 군사로 해로의 요충지 청해(淸海:莞島)에 진을 설치하고 가리포(加利浦)에 성책을 쌓아 항만시설을 보수, 전략적 거점을 마련했다. 그리고 청해진 대사(淸海鎭大使)가 되자 휘하 수병을 훈련시켜 해적을 완전 소탕했다.
837년(희강왕 3) 왕위계승 다툼에서 밀려난 우징(祐徵:神武王)이 청해진에 오자 이듬해 우징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839년 민애왕(閔哀王)을 죽이고 우징을 왕위에 오르게 하여 감의군사(感義軍使)가 되었다. 신무왕이 죽고 문성왕(文聖王)이 즉위하자 진해장군(鎭海將軍)이 되었다. 840년(문성왕 2) 일본에 무역사절을, 당나라에 견당매물사(遣唐賣物使)를 보내어 삼각무역을 했다. 845년(문성왕 7) 딸을 왕의 차비(次妃)로 보내려 했으나 군신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846년(문성왕 8) 그의 세력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 보낸 자객 염장(閻長)에게 살해되었다.
2. 8~9세기 동아시아세계의 시대상황
8~9세기는 동아시아의 역사상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볼 때에도 매우 흥미롭고 특기할 만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중앙집권적 통치체제가 무너지고, 지방의 토호들이 각지에서 자신들의 실력을 쌓아가며 독자적 세력을 형성해 나가던 지방분권적 체제로 변화해 가던 시기였다.
7세기 초에 중국대륙을 통일한 당(唐)은 율령을 정비하고 제도화하여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확립하였다. 당은, 이러한 정비된 통치체제를 바탕으로하여 중국대륙 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들을 제압하고 명실상부한 동아시아세계를 형성하고, 이를 주도해 나갔으며, 개방적이고 세계적인 제국으로서 역사를 전개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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