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lko, Simmons 등은 남북한 사이에 진행되고 있었던 군비경쟁이 북한군의 남침을 유발시켰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주요 논점은 당시에 남북한이 군비 경쟁 상태에 돌입해 있었다는 것과 한국군의 군비 증강이 군비경쟁을 촉발, 주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하에서는 실제 남북한의 군비 경쟁 추세를 병력수, 장비, 훈련 수준이라는 세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병력 수
여기서 미리 지적해야 할 것은 우리가 남북한의 병력수를 집계하는데 있어서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가 경찰병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측에서는 내부 치안용의 경찰 병력과 정규군 사이의 구별이 분명한 데 반하여 북한측에서는 내부 치안용 병력과 국방용 병력 사이의 구별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하여 1948년에서 1950년 까지는 경찰 병력을 총 병력 수의 집계에 포함시키고 1945년에서 1947년까지는 문제의 경찰병력이 좀처럼 추적되지 않기 때문에 경찰병력을 집계에서 제외시켰다.
또 1945년에서 1947년까지는 추적이 가능한 지상군 병력만으로 남북한을 비교 하였다. 결국 1945년-1947의 시기에서는 경찰병력을 제외한 지상군 병력이 비교의 기준이 됨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