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와 테러전쟁은 국제사회의 새로운 딜레마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이라크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다. 그는 이라크에 대한 전쟁결의안을 미국 의회에서 통과시켰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형식으로 국제사회의 승인도 받았다. 전쟁 목적은 알카에다의 배후세력이며, 그래서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고 새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테러의 싹을 자르고 중동전쟁의 불씨를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알카에다와 직접적인 연계가 없었기 때문에 부시는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 의혹 제거를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다. 부시의 무리한 전쟁 드라이브는 2001년 9.11 테러가 상징하는 이슬람 과격 단체의 공격에서 비롯된 “테러와의 전쟁”이 멈추지 않을 것임을 말해준다.
2. 부시의 테러전쟁과 북한 핵 문제
북한의 핵 문제는 테러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냉전의 유물인 세습적 전체주의와 연관된 북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전쟁위기와 직결된 문제이자, 대량살상무기 확산이라는 국제문제도 된다. 북한 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으로 떠오른 것은 1992년 5월부터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영변지역의 북한 핵시설이 핵무기 제조용으로 보인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IAEA는 핵사찰을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거절하자 1992년 독일 뮌헨의 7개국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IAEA의 사찰을 수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채택되었다. 국제사회의 핵사찰 압력이 가중되자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다는 폭탄선언을 함으로써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때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북한 공격을 검토하기도 하였다. 북핵 문제는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합의에 미국과 북한이 서명함으로써 해결되었고 국제사회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