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부터 10년간에 걸쳐 당시 프랑크푸르트시의 건축과장이었던 에른스트 마이가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한 것으로 1차대전 후 유럽에서 가쟝 성공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마이는 대규모 건설자금을 투입하고 토지수용을 단행하여 1928년까지 7,500호의 이상적 주택단지을 교외에 완성하였다. 그는 일단의 젊은 건축가군과 협력하여 니다계곡(Nidda valley)에다 옥상정원을 가진 연립주택이 주체가 된 프라운하임 (Praunheim)의 저원도시, 경사지에 변화풍부하게 건설한 뢰머르쉬타트(Rmerstat)주택단지, 지그재그형의 특이한 계획에 통일된 배치를 가진 브르크펠트(Bruckfeldstraze)가의 집합주택군 등의 대표적인 건설을 하였다. 이것들은 단순한 집합주택지가 아니라 중앙난방에다 기능적이고 쾌적한 경제적 집단생활이 가능한 완전한 의미의 주택단지이자 택지와 건물의 조형마저도 고려한 것이었다.
이러한 공적으로 제2회 CIAM (1929년)이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주거’라는 의제로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되었으며, 바우하우스(Bauhaus)와 더불어 대칭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도시와 건축을 생성시킨 공적이라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