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위원회는 정권을 인수하였다. 이들이 통일 문제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취한 조처는 극도에 달한 국내 정국의 혼란과 반공 체제의 약화, 통일 논의의 무질서를 극복하고 국론의 일치를 도모하는 일이었다. 군사혁명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혁명 공약을 하였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하며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하고 UN헌장을 준수하고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고 천명하여 5․16 혁명은 통일 운동에 커다란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즉 “선건설 후통일(先建設 後統一)”이라는 통일 원칙이었는데 이는 뒤의 제 3공화국 시기까지 이어진다. 또 위의 공약을 보면 마치 북한과의 무력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1961년 6월 24일 김홍일 (金弘壹) 외무부장관의 성명을 보면
“…우리는 무력에 의한 국토통일을 원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추구하며 UN감시하의 남북선거실시를 강조한다. …UN의 한국 문제에 관해 활동할 기능과 권위를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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